[책] <스토너> 독서 후기

📚 책소개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_신형철(문학평론사)
…이 작품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대학에 입학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꾼다. 전쟁의 열기가 젊은이들을 휩쓸고 갈 때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교수직에 몸담은 뒤에도 출세의 뜻을 내비치지 않는다. 조용하고 소박하게, 그러나 쉬지 않고 열정을 좇아가는 스토너를 보며 특별한 감동에 젖을 수 있다. 평생 한 곳에 살았던 스토너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넘어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 또한 《스토너》 초판본을 통해 이 소설이 견뎌낸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임을.」 이 한 줄의 책 소개 문구가 끌려 충동적으로 읽었다. 사실 독서 후기를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데, 그의 삶에 뒤엉킨 쓸쓸함에 대해 공감하고 결말을 향해 달려간 끝에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독서를 마무리하고 후기를 주절대고 있으나 어쩌면 아직까지도 이 책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줄거리를 통해 짧게 책 소개를 해보자면, 주인공인 '스토너'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래에 대한 꿈과 가치관 없이 부모님의 가업과 뜻에 따라 농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으나 대학에 진학한 후 마치 우물 밖을 벗어난 개구리처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과 열망으로 농부의 길을 포기하고 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개척하며 그로 인해 뒤따르는 고뇌의 과정을 때로는 열정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채워가는 한 남자의 일대기가 담긴 책이다.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장인이 솜씨를 발휘하여 소중히 엮은 의복을 입는 듯 섬세하게 와닿는 타인의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독서가 마무리될 즘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독자들의 연령이나 성별, 경험에 따라 감상은 다르겠지만 나는 독서를 마친 후 내 인생을 단편적으로나마 글로 적고 싶어졌다. 내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쓸쓸하고 고독할지언정, '스토너'를 읽듯이 내 삶 또한 공감과 회한의 마음을 담아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를 기다려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지난 3n년, 짧다면 짧은 나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애써 버리고 외면했던 시간들을 다시 긁어모아 글로 적다 보면 무심히 떠나보낸 순간들조차 어쩌면 한 장 한 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막상 나에 대한 이 장황함을 글로 적으려고 하니 무척 어렵군.
...불행은 평범한 한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머리카락 자라듯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전과 후로 나뉜다. 사실 일곱 살 이전의 기억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사진처럼 한 장씩 남아있으나, 영향력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큰 고난도, 시련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기록하기 위해 부모님께서 남겨놓은 자료들로 보건데, 그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걱정이 없고 산만하며, 명랑하기까지 하다. 대게 낯선 곳에서 장난스럽게 웃고 있거나 바닥에 몽땅 엎어버린 분유를 입 안에 쓸어 담고 있다. 입곱 살 이후로 인생이 요동치기 시작한 이유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1996년.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전환된 직후다. 나는 부모님의 계략 하에 소위 말하는 빠른 년 생으로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90년생이지만, 친구들은 모두 89년생 뱀띠이다. 때문인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키는 겨우 1m가 조금 넘어가는 조막만 한 땅꼬마였다. 작은 키 덕분에 키번호 1번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지만 명랑했기 때문에 작은 키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래들과 같이 일반적인 영유아기를 무사히 마치고 초등 교육 과정에 도달한 평범한 학생으로 성장했다.
초등학생이 된 후 나는 아파트 단지 내의 남자아이들과 딱지치기, 줄팽이 돌리기, 미니카 경주 등의 놀이를 즐기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의 놀이터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빌라의 느낌이 강하지만 아파트이기 때문에 아파트라 칭한다) 건물들이 세, 네 동씩 모인 초소형 단지 안에 형성되었다. 작은 규모의 건물이 모였기 때문에 동마다 어울렸던 동년배라고는 고작해야 한 명, 내지 두 명. 간혹 옆 단지 아이들이 슬그머니 발을 들이밀어도 소규모로 돈독해진 우리의 유대관계를 깨부수진 못했다. 시작과 끝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이 관계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항상 거기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지속되었다. 5층 아파트의 최상층에 거주했던 나에게는 독특한 추억도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외출이 번거로웠기 때문에 엄마는 밖에 있던 나에게 창 밖으로 두레박을 내려 심부름 금액을 전달했고, 장을 봐온 나는 그 두레박에 다시 물건을 전달하며 임무를 완수했던 일도 그중 하나다. 동네 전단지를 싹싹 긁어모아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창문으로 냅다 집어던진 적도 있다. 단지 안에는 '루루'와 '샹샹'이라는 아명으로 불리던 또래의 화교 형제도 있었는데, 한국어와 중국어에 모두 능통했던 이 글로벌 형제는 앙증맞게 묶은 꽁지머리 아래에 작은 금목걸이를 착용한 채 나타나곤 했다. 꼬마들이 뒤섞여 놀던 공터에는 커다란 고목이 감시자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껍질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새 잎이 더 이상 돋지 않는 죽은 나무였지만, 이 커다란 검은 기둥은 아이들 두셋이 양팔을 벌려 껴안아도 담지 못할 정도로 듬직해 영험함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달리기 경주나 숨바꼭질에 꼭 필요한 기준점이 되어주곤 했던 이 고목은 우리 가족이 동네를 떠나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소리 소문 없이 베어졌다. 내 몸과 마음만큼 변해가는 것들을 떠올리면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답게 촐랑대며 골목 귀퉁이로 사라지는 꼬마들의 잔상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즐겁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간만 잠시 체험한 후 돌아오고 싶을 정도로. 지금은 영영 소원해진 친구들의 소식도 궁금하다.
그러나 시련은 몰래 온 밤손님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법.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아마도 깊숙이 졸아든다. 또래 여자아이들의 괴롭힘으로 두려움을 깨닫고, 성장할 수록 엄격해지는 부모님의 통제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또래들의 괴롭힘은 쉽고 단순한 방식이었다. 실내화 가방에 넣어둔 새 학용품을 갈취하거나, 500원에서 1,000원가량의 용돈을 빼앗아가고, 외출을 거부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다니는 수준. 그러나 방어해 주는 사람은 없고, 이제 겨우 책가방을 짊어진 책가방만 한 꼬마가 견뎌내기에는 무척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번데기가 껍질을 벗어던지듯 나를 둘러싼 괴로움으로부터 탈피한 듯 보였으나 이미 주눅이 잔뜩 든 채로 중학교에 진학한다.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과 대부분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였지만, 표면적으로 우리는 내색 없이 잘 지냈다(그렇다. 겉으로만 잘). 나에게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사춘기가 거쳐간다. 그 과정에서 슬픔과 고독의 쓴맛을 얕게나마 깨우치며 청소년기를 극복한다. 그러던 중에도 극심하게 변모한 내향형 기질만은 극복하지 못했다. 동급생들과 점점 멀어지는 거리감을 방치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장 외롭고 살얼음판 같던 시기에 지금의 친구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 같은 일이다.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께서 서울 외곽에 패스트푸드 매장 운영을 부탁받게 되어 짧게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전학을 선택하는 대신 가족들과 떨어져 살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생활기록부 열람이 유행하던 시기에 나도 열람해보았다(초등학생 때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조금 슬펐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학생이었던가. 호르몬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영혼이 반쯤 혼미했을 중학교 2학년 무렵. 갑자기 드럼 강좌 하나를 등록한다. 기억이 명확하진 않으나 전문 학원이 아닌 화곡동 소재의 한 청소년 수련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던 기초 교육을 수강했던 것 같다. 같은 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드럼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정보와 낯선 곳을 찾아가는 용기는 스스로 어떻게 터득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개 중 명확한 기억 하나는 나의 첫 드럼 선생님이 수녀님이었다는 것. 안정적인 자세로 페달 위에 올라가 있던 선생님의 기능성 신발이나, 수녀복 차림으로 스틱을 힘차게 휘두르던 모습만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질풍노고의 시기에 유일한 흥밋거리는 드럼에 대한, 음악에 대한 관심 뿐이었다(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음악만이 이 혼돈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그 무엇도 나를 위해주지 못했다. 사춘기란 참 무서운 병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공부에 흥미를 붙이길 바라셨지만 지독한 멋(...)과 영혼(...)에 심취한 딸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아주 아주 지독한 수준은 아니었다. 교내 상위 16%... 수준의... 성적으로 하여금 딸이 조금만 더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드럼에서 시작된 이 열정은 나를 어떤 일직선상 위에 올려놓는다. 돌이켜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그 직선로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간혹 스스로 엉뚱한 선을 긋거나 새로 마주친 영역이 호기심을 자극하였지만 내 시선을 오래 잡아채진 못했다. 다른 선택지를 향해 쏟아부을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종내에는 벗어났던 모든 길을 다시 한 곳으로 회수한 천생 문과생이었던 이 학생은, 음향 엔지니어라는 꿈을 안고 대학 같은 대학 아닌 대학 같은 곳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겨우 20대에 진입했을 뿐인 이 어리석은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른 채 빨리 어깨의 짐이 무거워지길 바랐고, 부풀려진 찰나의 불행을 짊어진 채 섣불리 어른이라 자만했다. 어미새의 품에서 벗어난 아기새처럼 이제 겨우 서툴게 둥지밖을 벗어났을 뿐인데, 바깥세상에 대한 기대와 호기로 벅차오른다. 그렇게 목구멍으로 처음 넘어간 술 안에서 단 맛, 쓴 맛, 슬픈 맛을 모두 맛봤다. 일반 대학들과 달리 학점만을 취득할 수 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공 수업보다는 대외활동에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이 대외활동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잘 나가는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다. 학교는 실제 현업에서 활동 중인 교수들을 각 동아리에 배치하여 학생들을 연계해 주고 학생들은 교수들의 인맥과 능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실무 경험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이라 하고 노동력 착취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대세에 따라 나 또한 얼렁뚱땅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 정글 같은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정글의 왕인 교수님의 통치를 바탕으로 20대 학생들이 얽히고 섞여 치열하게 운영된 이 조직은 작은 사회 그 자체였다. 문제와 해결, 논쟁과 합의, 만남과 이별, 억압과 자유. 그런 모든 요소의 집합체였다. 그 안에 소속된 나는 어떤 착각 속에서 허둥지둥 3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 내가 입단했던 이 작은 사회는 교내외 행사를 기획하고 중계하는 동아리로, 중계와 동시에 음향 엔지니어링도 함께 병행하여 관련 분야에서 경험치를 쌓는 데에 유리해보였다. 호르몬의 장난으로 영혼이 혼미했던 10대와 달리 이 과정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괴로웠다. 나의 20대란, 그랬던 것 같다. 눈부신 어른의 무게가 나를 기쁘게 짓누를 거라는 예상과 모든 것이 달랐다. 청춘이란, 하나의 피사체를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화려한 조명이 아니었다. 주체를 돋보이게 하면 할수록 객석의 면면을 더 짙은 어둠 속에 감춰버리는, 고독 그 자체였다. 조각나고 흩어진 재료들을 갈고닦아서 관람객 앞에 내세울 완벽한 작품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었다. 겨우 끼워 맞춘 조각마저도 외부의 충돌에 의해 고요하게 부서지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3년이 지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조직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직에 소속된 후에도. 부서짐을 견뎌내기 위한 투쟁이 지속된다. 엔지니어는 꿈만 열심히 꿨다. 집채만 한 철근을 타고 올라가 허리에 두른 겉옷을 나풀대며 음향 장비를 설치하는 멋진 여성의 삶을 상상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외활동과 방송현장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들이 현실의 고단함과 두뇌의 한계를 깨닫게 했다. 장래에 대한 고통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독학으로 시작했던 영상 편집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해 해당 직종에서 20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또 한 번의 직종 전환을 거친 나는 다시 낯선 사회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잠기고 떠오르고 다시 잠기길 반복하는 중이다.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은 권태로 똘똘 뭉친 30대의 평범한 인간이 되어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나의 신장은 성장을 완벽하게 멈추었지만, 내면 깊은 곳의 성장판은 아직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물리치지 못했던 악귀(...)와 변덕을 슬기롭게 다스려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성공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에 도달해서야 보이는 것들이 참 새삼스럽다. 나에게는 먼저 떠난 시간보다 더 많은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나약한 의지를 가진 미완성된 사람이다.
...독서 후기의 마무리를 지어보겠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성공한 삶에 대한 좌표는 무엇일까. 부와 자본, 권위와 명성을 쫓는 것? 아니면 사랑과 결실을 추구하는 것? 그렇다면 나와 스토너의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우연히 찾아온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농부에서 교수로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고, 반항과 성취로 고양감이 들 때에 세상은 혼란스럽게 흘러가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은 처절하게 실패, 그리고 원하던 일을 얻어냄과 동시에 원한 적 없던 고독을 잘근잘근 견뎌내야 했던 '스토너'. 그리고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얼렁뚱땅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의 나이에 접어들자 결국 한 기업에 노동력을 헌신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삶. 스토너는 성공한 사람인가. 나는 실패한 사람인가. 인간의 생애는 성패를 정의할 수 있는 가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으며, 어쩌면 행복이라 여겼던 순간을 품은 채 실패에 가까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소망하는 바에 비해 고통스럽고 지난한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답이 없는 문제지를 한 장씩 들춰보며 맞닥뜨린 이 혼돈을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 인생을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해 줄 것이라 믿는다.
- 저자
- 존 윌리엄스
-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
- 출판일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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