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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책표지 / 출처 @다음 책소개

 
 
📚 책소개

쇼펜하우어는 니체의 철학,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말해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어떤 철학자, 작가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이 책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가 출간 6개월 만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0만 부 돌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기념해 펴낸 스페셜 에디션이다.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저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쇼펜하우어가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결국 불행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펜하우어는 일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여덟 권이다. 괴테를 비롯한 수 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그의 도서들과 편지, 일기 등에서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통찰과 정곡을 찌르는 인생 조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쇼펜하우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이 책을 읽게 되는 순간, 옛 철학자의 독설 안에 감춰진 열망과 투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을 읽고 난 후다. 취업 준비로 삶의 권태에 빠져있던 당시, 친구와의 주된 대화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구 멸망에 대한 염원이었기 때문에 고통을 갑옷처럼 두르고 최악의 세상을 살아보고자 하는 염세주의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번 독서는 쇼펜하우어가 세상에 대한 불신만이 가득한 사람인 줄 알았던 나의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죽음을 위해 주어진 인생을 망치고 있던 자신에 대한 회한, 그리고 세계와 관계에서 얻은 통찰들이 지금의 이 책을 만들었다. 내용이 쉽진 않으나 술술 읽혔다. 사실 철학적 깨달음이나 깊이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책에 담겨있는 사상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생관을 표상하고 있어서 책의 내용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책을 읽은 직후엔 쇼펜하우어의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마를 훤히 드러낸 채 자신감에 차 있는 백발의 노인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1788년 독일,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존경하던 아버지의 죽음과 사교계에 뛰어든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후에도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하고 교단 앞에 섰지만, 헤겔에게 밀려 각광받지 못했다고 한다.
 
 

현명할수록 명예와 체면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안다.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명예란,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 나 혼자 주창하는 권리.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휘두르는 입속의 칼날.
증오하는 자와 맞서 싸우는 위협의 명분으로 남용되는 중이다.

 
 
가끔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통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내 욕심에서 비롯된 판단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타인을 향해 털어내는 먼지를 바라보며, 저것이 나에게 옮겨 붙진 않을까 꾸준히 걱정하며 산다. 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본질적인 고뇌와 평가를 배척한 채 타인의 평가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간계에 휩쓸려 그것이 진리인 양 무기처럼 휘두르기 시작하게 된 걸까. 최근 들어서 고민이 많았던 주제다(이게 다 인간들이 만든 계급사회 때문이다). 인간에게 명예와 체면을 부여할 수 있는 명분은 무엇인가. 이것이 신의 뜻인가. 자연의 섭리인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 인간이라는 종을 파헤쳐 보건대, 우리 인간은 계급과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수태 과정을 거쳐 탄생했으며 나이가 들면 늙어 죽고, 총칼을 피하지 못해 죽고, 병이 들면 고통 속에 죽어왔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자명한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편의에 의해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와 명예에 따라 인간이길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훌륭한 지휘자는 명성에 걸맞은 연주가 마무리될 때까지 지휘봉을 들고 연주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며, 전쟁에 참전한 군인은 훈장이라는 명예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다수를 희생시켜야 한다. 명예가 쥐어준 것이라고는 책임감과 희생뿐이다.
 
쇼펜하우어는 체면에 대해 「나라는 실체적 가치보다 타인이 내리는 평가가 진실에 더 가깝기까지 하다는 현대사회의 체면 중시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평판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풍문일 뿐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타인에 의해 언제든지 만들어지는 조제품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가꾸는 것이다. 우리는 나라는 주체적 존재의 의지에 집중해야 한다.
 
고통과 사색 없이 얻은 명성은 거짓이다. 그것은 옮고 그름에 대한 인지를 방해하고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진리로 간주하게 해 자신이 아닌 타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은 사소한 것조차도 배척하면서 타인의 고통은 감지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태에 이른다. 그들의 주변에는 혀가 긴 뱀들이 달콤한 말을 흘려 텅 빈 뇌를 지배하고 실리를 챙긴다. 유혹적인 말이 통각을 지배한다. 그들은 어느새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명성 위에 올라서서 또다시 누군가의 고통을 위해 지휘봉을 휘두른다.
 
쇼펜하우어는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할 자신이 없어 반대급부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아집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존경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가 존경하는 군자는 스스로 존경의 대상이 되고자 애쓰지 않는다. 군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 인생에는, 설계도대로 제작된 성인군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생이 교육 서적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악인이다. 고통에 대한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고집과 편견으로만 구성된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와 눈을 마주하고 대화해 보시길. 존경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진심으로 존경을 심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자 말라」고 경고한다.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힘들게 자신의 이해와 통찰을 동원하기보다는 타인이 떨어트린 몇 마디 말을 잽싸게 주워 담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삼킨 후 배설하기를 즐겨한다.」 그는 냉철한 어조로 사색이 부족한 이들을 비판한다. 눈앞에 제시된 의견이나 정의에 대하여 사색을 통해 보완하고 정립된 결정과 판단이야 말로 스스로를 개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독립적이고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는 것. 쇼펜하우어조차도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둘리는 내면에 대해 고뇌하고, 정직하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외부의 재단에 따라 결정된 것을 스스로 습득한 냥 여기는 것은 판단이 아닌 다수에게 지배된 권위에 따르는 것과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권위에 따르는 이들의 통념은 무너뜨리기도 쉽지 않다.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한 탓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대상을 판단하는 것은 사색과 통찰 없이도 가능하다. 자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수록 판단은 쉬워진다. 칭찬은 중요한 동기부여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의 내면을 정립하지 못한다. 따라서 외부의 판단에 휩쓸리기 전에 내면을 가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행복은 희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상실 없이는 기쁨이 없고, 절망 없이는 진리에 대한 감지도 없다. …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보다 명확한 전제는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따르면 행복은 불행으로 직결된다. 행복은 더 나은 생에 대한 욕심이고, 이는 나아가 실현될 수 없는 행복을 지속적으로 갈구하게 하여 인간을 끝내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욕심이 없는 삶. 이와 유사한 가르침을 불교 용어에서도 본 적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당시 서양학자 중에서도 드물게 동양 철학인 힌두교나 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어보니, 이미 수 세기 전부터 행복은 인간의 삶에 끼어들어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와 문명을 가꿔온 우리 인간들은 예로부터 평화와 행복을 갈망했고,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냈다. 하지만 고통 없이는 행복도 없었다. 정복과 명예를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르고, 불공정한 이념 앞에 국민들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해야 했다.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행복을 위한 국가는 없다. 오직 국가의 행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고, 그것이 마치 다수를 위한 선인 양 떠들어댈 뿐이다. 말 그대로 위선이다.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이것을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행복에는 수단이 없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특정 대상으로부터 얻은 행복은 부메랑처럼 불행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인간에게는 의무와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불행일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성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는데, …(중략)… 잘 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며, 인간성이야 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인간성은 사유를 뜻한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사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행복은 사유다.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행복에는 규정도, 완성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사유로써 실현된다. 원인과 과정, 결과에 상관없이 통찰과 사색으로 완성된 인간만이 행복할 수 있다. 어려운 방법이 아니다. 만족에 대해 떠올리는 것이다. 혹자는 타인의 행복을 나의 행복과 동일시하여 무작정 좇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유의 부족이 초래한 오류다. 나는 앞선 독서에서 뇌 호르몬인 도파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행복 물질로써 동기부여의 원천이 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인간의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려면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현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한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뇌 과학적으로도 인간은 동기부여 없이 행복을 획득할 수 없다. 의지가 행하지 않은 행위는 복종일 뿐이다. 내 것이 아닌 선물을 원하고 욕심내는 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행복은 추구할 수 없다. 한 움큼 쥐었다 놓으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백사장의 모래알과 같은 것이다. 찰나의 순간 빛을 발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행복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이다. 쇼펜하우어는 불평불만이 가득한 이들에게 고통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그것으로 인간은 행복할 수도 없지만, 불행할 일도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통과 함께다.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울고, 언어를 습득하며, 부모 또는 또래들과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학업과 교우 관계 속에서 치열한 청소년기를 거친 이 아이는 인고의 노력 끝에 성인으로 성장하지만 다시 사회에 나와 타인과 경쟁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일생을 헌신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수록 죽음과 가까워진다. 죽음이 인간의 가장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략)… 행복을 원하기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통찰한 인간의 행복한 결말은 단 하나, 죽음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공통의 사명이자 가장 명확한 전제다. 이에 따라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 또한 '잘 죽는 것'이어야 하는데, 잘 죽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행복만을 추구하며 무의식적으로 불행을 수집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내 인생에서 집착과 욕심을 얼마나 버릴 수 있을까.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는 방법은 이 것이 최선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간수는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창살 밖에서 우리를 감시한다.
간수의 정체는 권태다. 

 
 
인류에 대한 통찰은 끝이 없다. 비록 내가 살아온 생애란 겨우 3n년치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겪어본 중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다. 우리 인간들은 매일 사는 것이 괴롭고, 지겹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이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질병과 사건은 회피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노력한다. 이 시기의 인간은 자극과 고통에 대한 지독한 면역으로 인해 자신을 쉽게 권태에 방치하곤 한다. 「권태는 언제나 우리 등 뒤에 서 있다.」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인간이 무기력 상태에 빠져 탈출의 의지를 잃게 만드는 것이 바로 권태다. 쇼펜하우어는 권태를 인생에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말한다. 권태는 나태와는 또 다른 인간의 적이다. 권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 부지불식으로 정신의 탈력감을 유발하게 된 것이며, 나태는 표상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이라 할 수 있겠다. 권태에 매몰된 영혼은 낙원에 도달한 것과 같아서 벗어나기조차 쉽지 않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룬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권태뿐이다. 인간의 생체 리듬은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행위만으로도 그 주기가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데, 영혼은 스스로 호흡할 수 없다. 권태에게 답을 주고자 한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시련 속으로 정신을 다시 내던지는 방법 단 하나뿐이다. 권태로 영혼의 좌절을 맛본 인간은 습관처럼 다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는 고통이 희망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혼자일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다. 그러나 인간은 대게 배가 고프거나, 추위에 떨고, 소유에 집착하는 등 사소한 통증에 대한 아픔조차 제대로 된 면역을 갖추지 못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시련과 고통 없이는 인간의 생애 또한 없다. 우리는 아픔의 역사를 지녔고, 지난 아픔을 되새기며 새로운 투쟁을 맞이하고, 지금까지도 만성 질환처럼 꾸준히 아프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은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일 뿐인데…(중략)…이 아픔에서 탈출한 몇몇 가진 자들마저 권태라는 새로운 아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라면 이 비참한 현실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한 가지 사실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한편,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나그네의 길임을 그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 당시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대가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우리는 다시 다음날의 햇살을 맞이한다. 햇볕이 따사롭다면 그것으로 잠시 눈이 부신 아침을 맞이할 뿐이다.
 
충돌과 경험 없이 이뤄낸 것들을 진정 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에게만 허락된 이 시련을 고뇌와 사색으로 극복했을 때, 나 스스로에 대한 가치와 평가를 정립할 수 있고, 이는 곧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보상이 되어줄 것이다. 고통이 자의식의 완성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군주와 같다고 말한다. 사색하는 자만이 행복을 맛볼 수 있듯이, 스스로 생각하고 통찰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시련을 견뎌냈을 때에 인간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며 독립적인 지위를 누릴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막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외부에서 나를 고립시켰다고 판단되는 적개심은 고독이 아니다. 고독은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 무기로써 작동한다. 나의 의지를 믿기만 한다면 인생은 두려울 이유가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의지밖에 없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이 책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고통과 행복뿐만이 아니라 우정의 숭고함, 늙음에 대한 성찰,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 등등 사색의 결과로 얻는 통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녀노소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어조로 울림을 주는 책이다.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나'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를 세상의 표상으로 온전히 구체화하는 것이 어렵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가 내면에서 단단하게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내면을 표상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얕은 사람이다. 어떤 날은 개방된 잔디처럼 짓밟기 쉽고, 어떤 날은 도마 위에 올라온 활어처럼 통제가 안된다. 나 스스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나에겐 큰 번민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원하는 것, 추구하는 사상, 좋아하는 일, 목표 같은 것들. 이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며 산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지금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을 해내고, 나이가 듦을 슬퍼하고, 짧은 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는다. 가끔은 추구와 쟁취를 위한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초라한 나를 돌아보곤 하는데, 삶을 견디는 방법이 정해진 것이 아닐 텐데 어째서 내 삶이 그저 흘러가는 데로 소비되는 것을 슬퍼해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초연할 수 없는 것이 곧 슬픔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들이 나를 어찌 알겠남.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수십 번도 더 똑같은 새벽을 맞이하며 생각했다. 인간의 노력과 고뇌가 종내엔 동일한 결말(죽음)을 맞이하게 될 텐데, 우리가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의 순간 느껴지는 회한의 정도로 삶의 무게를 측정한다면 지금 내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울까.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것. 인생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 경량의 원인이라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비참할 것이다. 융해된 플라스틱처럼 세상에 녹아있는 나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불행한데, 인간이란 비단 죽기 직전까지 생애에 대한 집착을 움켜쥔 채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한심한 인간으로 만든 거지. 얕은 하루를 힘겹게 쌓아 올려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내가 나를 매일 부정하며 산다.
 
사색을 통해 인간이란 고독할 수 없으며 중력처럼 잡아끄는 고통의 힘 없이는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우울한 결말을 맞이하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비단 비참한 것은 아니다. 나를 아주 잠시 잠깐 우주의 일부로 만들어준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고, 원자처럼 미세하여 육안으로 감별할 수 없는 존재로. 별 것 아닌 존재로서의 나를 방관할 때 비로소 편안하다. 무한의 공간을 공허한 마음으로 방황하다 보면 머지않아 고통과 손을 잡고 파멸을 향해 물처럼 흘러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별은 소멸하면 먼지가 되지만 다시 새로운 별의 탄생을 낳는다. 우주의 시간을 잠시 빼앗아 살아가는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진 지극히 다른 존재이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별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작은 몸으로 무중력을 떠돌고, 부딪히고, 추위에 떨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는 언젠가 환희의 빛을 발산하며 소멸할 것이고, 먼지가 되어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다시 우리가 낳은 새로운 존재를 남기고 자연의 공허 속을 초연히 배회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문해력과 끈기가 따라와 준다면 그의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읽어 보아야겠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말해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 어떤 철학자, 작가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이 책은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가 출간 6개월 만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0만 부 돌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기념해 펴낸 스페셜 에디션이다.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저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출판
포레스트북스
출판일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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