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7년의 밤> 독서 후기 #소설
📚 책소개
7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난 『7년의 밤』.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와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의 작가 정유정. 그녀가 수상 이후 오랜 시간 준비하여 야심 차게 내놓은 소설이다.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는 이 작품은 액자 소설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떠돌던 아들이 아버지의 사형집행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7년 전 그날 밤으로 아들을 데려가고, 아들은 아직 그날 밤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한편, 소설 속 소설에서는 7년 전 우발적으로 어린 소년을 살해한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남자와 딸을 죽인 범임의 아들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피해자의 숨 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이렇게 긴 장편 소설을 읽은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휴우. 완독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의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읽었는데, 이미 2018년에 영화화된 작품이었잖아? 평가가 썩 아름답진 않지만... 소설 속에 배치된 장치들이 무척 긴밀,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영화화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개인적인 사심을 가득 담아 탈주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구교환 배우와 송강 배우를 각각 안승환과 고등학생이 된 최서원 역으로 대입하며 읽기도 하였다. 껄껄꺼얼😜
이 책은 소개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살인자 아버지의 사형으로 인해 7년 전의 그날로 되돌아가는, 끝나지 않은 그날 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7년 전의 사건과 7년 후의 시간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7년 전 과거에는 최현수와 오영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7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최서원과 안승환이 소설의 마지막을 매듭짓기 위해 분투한다. 소설의 배경인 세령마을 일대는 작가님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최현수', '최서원', '강은주', '안승환', '오영제'다. 인물 소개를 짧게 해 보자면, 최현수는 은퇴한 야구선수다. 젊은 시절 전도유망한 포수로 활약했으나, 부상 때문에 야구를 내려놓고 보안 관리직에 취직하여 종사하던 중, 은주(현수의 아내)의 강요로 세령댐 보안관리 팀장으로 발령을 받아 세령마을에 흘러들어온 인물이다. 최서원은 현수와 은주의 아들이다. 야구선수였던 아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강단 있고 씩씩한 초등학생이다. 7년 후 고등학생의 나이가 되어 남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 중 하나다. 강은주는 앞서 언급했듯이 최현수의 아내로, 현수와의 부부관계는 원활하지 않지만 서원을 위해 억척스럽게 가정을 이끌어 온 생활력 강한 여성이다. 안승환은 현수의 부하 직원이지만 세령댐 사택에 먼저 머물고 있던 인물이다. 그의 본업은 소설 작가다. 생계를 유지하고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세령마을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잠수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잠수에 능하다. 세령마을로 내려온 현수의 가족들과 사택에서 한지붕살이를 하게 된다. 서원과 함께 7년 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오영제는 지방 토호의 아들로 개업한 치과의사다. 부와 권위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부리고, 완벽을 추구하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제자리에 있어야 할 도구로 취급하며 폭력을 서슴지 않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졌으며, 최현수와 대립하는 최종 빌런이기도 하다. 사건의 시작은 그날의 밤, 오영제의 딸 세령이 사라진 그날부터 시작된다.
내가 여태껏 읽었던 책들 중에 가장 친절한 소설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사실 낯선 단어도 많았고, 상상력이 부족하여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배경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지는 않았다(나처럼 상상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소설 앞 장에 세령마을 지도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내 사정과는 별개로 이 한 권의 책이 완성도 높은 소설이 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탐구가 깃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여행을 좋아하는 대문자 J(MBTI에서 J)친구가 계획한 여행계획서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 친구의 여행은 맛집과 동선, 기후뿐만 아니라 풍향과 습도까지 고려되고, 그때그때 필요한 의상과 준비물 등이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필요한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이 소설 또한 그렇게 여겨졌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 또한 마찬가지다. 서사라는 줄에 꽁꽁 묶여있던 감정이 작은 생채기 하나로 폭발할 때의 인간들의 심리가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짐작해 보건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묘사일 것으로 여겨진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점점 파멸에 가까워지는 인물의 숨 막히는 내면을 간접 경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감정에 과몰입하여 소설 속으로 뛰어들어가 누구의 바짓가랑이든 붙잡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뜯어말리고 싶었다.
소설 마지막 즈음에 우연히 이어폰을 타고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이라는 곡이 흘러들어왔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가사의 뜻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소설의 결말과 어울리는 리듬의 음악이었다. 마지막 장을 펼쳐둔 채 음악이 끝날 때까지 소설의 여운을 만끽했다. 소설이란 허공에 존재하는 타인들의 이야기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음, 영화도 마찬가지). 소설을 읽으면 신체 일부를 새로 갈아 끼우고 새로운 문을 열게 되는 기분이 든다.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순간들을 견뎌낼 때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질된 한 인간의 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공(ball)'을 지켜내기 위해 혼비백산 속에서도 달려온 것처럼, 우리의 계획되지 않은 좌절과 고통도 끝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저자
- 정유정
- 출판
- 은행나무
- 출판일
- 2016.05.30
'취미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트렌드 코리아 2025> 독서 후기 (4) | 2025.02.10 |
---|---|
[책] <싯다르타> 독서 후기 (3) | 2025.02.03 |
[책] <인간 실격> 독서 후기 (1) | 2025.01.23 |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독서 후기 #HSP #초예민자 (3) | 2025.01.22 |
[책] <유전자 지배 사회> 독서 후기 (1) | 2025.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