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
대한민국 중소기업들의 노비로 살아온 지 1n년차.
삼십 대 중후반에 접어든 이 시점에...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아직 4년여의 시간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사십 대를 바라보며 사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이건 아니지. 이건 진짜 아니지. 현실을 외면하고 변해가는 신체를 묵과한 채 버텨오던 어느 날, 나 홀로 쉬쉬하던 단어를 엄마가 입 밖으로 꺼내버린다. 내 딸이 이제 곧 사십대라니. 아니 아니요, 엄마... 아직 아니에요. 아니 그런데 맞아요. 마음은 아닌 게 아닌 것 같아요.
이럴 줄 몰랐지. 서른 살이 되었을 때와 많은 것이 다르다고 여겨진다. 삼십 대가 되었을 때 불어닥친 마음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제 계란 한 판 채웠다고 장난도 치고 웃으며 가볍게 지나갔다. 어른 대접이 받고 싶었던 꼰대력은 이미 이십 대 때 절정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삼십 대인 근 몇 년 간 경험한 사건이란, 모두 다이나믹하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고, 백수가 되어 놀아보기도 하고, 회사에 다시 취직을 하고, 10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후 또 한 번의 이별을 경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마음은 오히려 점점 차분해져 갔다. 조금 더 빨리 지치고(체력 저하), 조금 더 씀씀이가 커진 정도(수입의 미약한 증가)의 변화만을 체감할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대책도 없고 얼렁뚱땅 흘러가는데로 살고 있었는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도 없이 내 삶에 침투한 것이 사십대라는 단어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멈추고 싶다. 집과 직장을 오고 갔을 뿐인데, 시간이란 참 냉철하고 매정하게 흘러간다. 내가 시간을 맨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동안 친구들과 지인들은 모두 결혼에 골인하여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SNS를 열면 천하제일 자녀자랑대회가 펼쳐진다. 그들의 변화와 달리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의 현재가 초조함을 부추긴다. 대문자 I, 내향 오브 내향인이라 가뜩이나 친구도 적고 외부 활동도 없는 나란 인간(왜 때문에 축의금은 계속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살아가야 할 먼 훗날을 떠올리니 이 또한 암담하다.
회사에서는 삼십 대 초반 늦은 나이에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아직 대리 딱지도 달지 못하였는데, 이십 대의 신입 사원들이 주류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고인물로 낙인이 박혀가는 것만 같아 이 또한 슬프다. 최근 들어 더 그렇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로 태어났기에, 소외감이 드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또 내 자리를 벗어난 곳에 지나치게 발을 밀어 넣고 싶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인데, 목소리도 작고, 말주변도 없고, 체력도 많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눈치는 또 오지게 많이봐서 남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도 않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견뎌야 한다 vs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두 마음이 매일 청기백기 게임을 하는 중이다. 이토록 정신도, 체력도 나약한 사람이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은퇴만 바라보며 20년 넘게 더 다닐 수 있을까. 업무에 대한 확신도 없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삶이 돌아가고 있지만, 발전도 노력도 없이 마음 놓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삶이 내 인생에 전부인가. 이대로는 안정적인 삶을 얻지 못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은 많은데 막연하기만 하다. 과감하게 실행할 용기도 없다. 지금은 '늦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문장이 내 삶에서 파괴력을 잃었다.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우려와 회피로 인해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적당히 써먹을만한 기술도 없고, 공부는 자신이 없고, 흥미로운 일은 찾기 힘들고, 지나치게 즉흥적이며, 꾸준히 노력할 끈기는 없다. 모아놓은 돈은 많지도 않고. 답답해서 지피티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그는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공감해주고, 가능성을 높게 사며, 아주 긍정적인 답을 차려놓는다). 남들은 미래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노력하는데, 나만 계속 현재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이대로라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뭐라도 해야만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고, 고민이 참 많은 요즘이다.